# 50대 강준만 씨(가명)는 요즘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있다. 2013년 처음 손을 댄 '온라인 사설 토토', 즉 불법 스포츠 도박 때문에 집이 패가망신하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2년 동안 그는 10억 원 정도를 잃었다고 했다.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며 모은 돈을 모두 날리고 2억 원의 빚까지 졌다.
강씨는 원래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하는 합법적인 '스포츠 토토'를 했었다. 그런데 2013년 10월 스포츠 토토가 시스템 전환을 이유로 5일간 발매를 중단했을 때 처음으로 불법 스포츠 도박에 발을 담갔다. 강씨는 "그 5일을 참지 못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강씨는 그 후 스포츠 도박, 사다리 등 게임 진행이 빠른 사설 온라인 도박에 빠져 거액을 잃었다. 그 후 가족들에게 외면당한 강씨는 지금은 식당에 나가지 못한 채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다.
그렇다고 강씨가 사설 온라인 도박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건 아니다. 강씨는 아직도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온라인 도박 생각이 난다고 한다. 그는 "제발 이 사이트들 좀 모두 없애 달라"고 간절히 말했다.
# 경북에 사는 윤석진씨(32·가명)가 불법 스포츠 도박에 손을 댄 건 2009년이다.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던 그는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스포츠 도박을 시작했다. 합법적인 스포츠 토토보다 배당률도 높고 환전이 빨라 쾌감이 더 컸다.
그렇게 3년 동안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한 윤 씨에게 남은 건 수천만 원의 빚이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모은 돈 3000만 원을 날린 데 더해 대출금 3000만 원이 새로 생겼다. 윤씨는 현재 스포츠 토토만 하고 있다. 경찰 단속의 위험이 있고 스포츠 도박 운영진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자주 들르는 스포츠 정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꾸만 스포츠 도박을 유도하는 쪽지를 보낸다. 이미 그 위험성을 경험한 윤 씨는 다른 누군가가 그 덫에 걸릴까 걱정이다.
그는 "중국, 필리핀 같은 곳에 서버를 둔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홍보하려는 카페 운영진들이 있다"며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의 돈을 걸게 한 뒤에 돈을 따면 해당 고객을 차단하는 곳들도 많다"고 말했다.
◆ 현 프로농구 감독 이름도 오르내리는 불법 스포츠 도박
최근 현직 프로농구 감독이 불법 스포츠 도박과 승부 조작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 규모와 중독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2년 말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와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발표한 '제2차 불법도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포츠 도박(사설 토토)의 시장 규모는 7조61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이듬해 형사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서는 31조1171억 원으로 추산됐다.
스포츠 도박 시장에 대한 복수의 조사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이지만, 2014년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스포츠 토토 시장의 규모가 3조782억 원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불법 시장이 합법 시장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감위 조사에 따르면 스포츠 도박 운영단은 30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실제 참여자가 300~500명인 대형 스포츠 도박 사이트의 운영단은 10~15개로 추산된다. 실 참여자가 100~300명인 중형 사이트의 운영단은 40~50개, 실 참여자가 50~100명인 소형 사이트 운영단은 200~300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불법 스포츠 도박, 이래서 무섭다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의 규모가 합법적인 스포츠 토토 보다 큰 것은 게임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이익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스포츠 토토는 1인당 총 10만 원까지만 걸 수 있지만 스포츠 도박은 수백만 원을 걸 수 있다. 게다가 같은 게임에 중복으로 참여할 수 있어 사실상 무한대라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특히 스포츠 도박으로 얻은 이익금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 스포츠 토토의 경우 단위금액(100원~10만 원)의 100배가 넘는 이익을 얻으면 22%의 세금을 내야 한다.
배당률도 스포츠 도박이 스포츠 토토보다 높다. 스포츠 토토는 수익의 일정 부분이 공익 기금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배당률이 낮다는 게 사감위의 설명이다.
동일한 게임 결과에도 스포츠 도박의 배당률이 높아 합법인 스포츠 토토보다 더 큰 돈을 벌 게 한다. 스포츠 토토는 2개 이상의 게임 결과를 맞춰야 배당금이 주어지지만 스포츠 도박은 1개의 게임 결과에도 수십 배의 이익이 가능하다.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이 커진 이유 중 하나다.
스포츠 토토는 야구, 농구, 축구 등 인기 스포츠의 국내 리그와 미국 메이저리그, 유럽 축구 리그 등 소수의 해외 경기를 대상으로 운영된다. 반면 스포츠 도박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스포츠 리그를 대상으로 해 24시간 운영된다.
단순히 경기 승패, 점수를 선택하는 스포츠 토토와 달리 불법 스포츠 도박은 코너킥 횟수(축구), 첫 점프볼 소유권(농구) 등 경기의 세부 내용을 게임으로 만들어 돈을 걸게 한다. 빠른 시간 내에 결과가 나오는 게임을 만들어 도박의 회전율을 높이는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경기 내용까지 게임화하는 스포츠 도박의 특징은 승부 조작 가능성을 높인다. 경기 전체의 승패는 소수의 선수가 관여하기 어렵지만 일부 경기 내용은 한두 선수의 의도로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환전 신청을 하면 바로 이뤄지고 환전 받은 돈으로 즉시 다른 게임에 돈을 걸 수 있어 스포츠 도박의 중독성은 더 크다.
◆ “스포츠 도박 70%가 먹튀 사이트”
하지만 불법 스포츠 도박 참여자들에게는 운영진이 돈을 갖고 도망갈 수 있다는 불안이 언제나 도사린다. 경찰에 잡힌 스포츠 도박 운영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스포츠 도박 사이트 가운데 70%가 돈을 갖고 사라지는 이른바 '먹튀' 사이트로 추산된다.
이들 사이트 운영진은 운영 자금력 부족으로 사이트 전체를 폐쇄하기도 하고 일부 참여자가 고액의 수익을 얻으면 해당 이용자의 ID를 삭제하고 IP를 차단하는 수법으로 배당금 지급을 거부한다.
어제(27일) 경북지방경찰청이 검거한 불법 스포츠 도박 운영단은 국내 최대 규모인 4200억 원의 판돈이 걸린 스포츠 도박을 운영하면서 922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 일당은 경기 결과를 맞춘 회원에게는 배당금을 주고 결과가 틀린 회원의 돈을 걷는 방식으로 수익을 거뒀다. 배팅 금액 가운데 운영진이 가져가는 비율은 21.8%부터 36%까지 됐다.
특히 수천만 원이 넘는 거액의 배당금을 획득한 이용자에게는 사이트 폐쇄 등을 언급하며 협박해 배당금을 깎거나 아예 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스포츠 도박으로 인한 피해 사례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여기에 참여한 자도 범법자이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사기 사건은 피해자의 제보가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하지만 스포츠 도박은 참여자도 형사 처벌 대상이기 때문에 수사 협조를 받기 어렵다"고 전했다.
◆ 3년 간 13만 개 차단해도 근절 어려워
국민체육진흥공단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13만 개가 넘는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대한 접속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2012년 2만3708건, 2013년 4만6527건, 2014년 6만7498건으로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접속을 차단하는 조치가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접속이 차단되면 다른 사이트 주소로 옮기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스포츠 도박 사이트 운영진을 소탕해 불법 시장을 없애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문제가 아니다.
경찰은 스포츠 도박 사이트의 운영자들이 대부분 외국에 회사와 서버를 두고 있어 적발이 순조롭지 않다고 말한다. 이 운영자들은 외국의 서버와 도메인을 사용한 사이트를 주기적으로 변경해 단속망을 피한다.
이들은 입출금 통장으로 여러 개의 대포 통장을 사용하고 입금 통장에 입금이 되면 바로 안전한 통장으로 돈을 옮기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포폰을 사용하고 자주 사무실을 옮기는 식으로 단속을 피하는 일당도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스포츠 도박 운영진이 국내 서버를 이용한다면 수사가 신속하겠지만 해외에 서버를 뒀다면 현지 경찰 당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현지에 도움을 요청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는 등 스포츠 도박 운영진 소탕에 애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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